누나, 나랑 결혼하면 안 돼요?

사랑스러운 제 트친 후와 씨가 써준 글입니다...
고마워... 사랑해...



양호열은 욕심을 내지 않는 삶을 살았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즐기고 없다면 없는 대로 즐기는 것을 잘했다. 갑자기 손에 쥐어진 달콤한 행운 같은 것을 꿈꾸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손에 들어온 것들이 모래처럼 손가락을 간지럽히며 빠져나가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단 한 번도 목 놓아 붙잡은 것은 없었다. 누구보다 소중하고 친한 백호가 농구선수가 되리라 먼 나라로 떠났을 때도 응원할 뿐이었다. 공항에서 입술을 비죽 내민 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들어가지 않던 강백호에게 먼저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 것은 양호열이었다. 그제야 백호를 마중 나갔던 많은 이들이 손을 흔들어주고 잘 다녀오라고 말해주었다. 그중에는 콧등이 붉어져 울먹이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백호와 많은 시간을 보낸 양호열은 그러지 않았다. 강백호는 이런 것에 서운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울면 백호가 더 곤란한 표정을 짓겠지. 그런 생각들을 하며 강백호의 붉고 둥근 머리가 안 보일 때까지 모두가 훌쩍이며 뒤돌아 돌아가도 양호열은 끝의 끝까지 마지막을 지켜봤다. 영화관에서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모두 지켜보는 마지막 관객처럼. 그러니까, 양호열은 자신에게 훌쩍 다가온 누나, 라는 사람의 손을 꽉 잡는···. 흔한 로맨스 영화에서 삶과 죽음을 말하며 애절하게 매달리는 모습의 연인은 될 수 없었다. 그저 누나의 작은 손이 자신의 손을 조금 꼭 잡아주면 그대로 자신도 꼭 잡고 웃어주었다.



너희는 결혼 안 해?”


양호열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누나하고는 꽤 친했던 이의 결혼식이었다. 늦으면 안 된다며 손을 꼭 잡은 채 가볍게 뛰던 누나의 모습에 양호열은 그저 웃었다. 가볍게 부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좋아하는 누나의 콧방울이나 작은 입술, 얼굴에 별자리처럼 수놓아진 점들이 보였다. 몇 번이나 봐도 또 보고 싶어지는 얼굴. 양호열이 볼에 새로 생긴 점은 없는지, 그런 가벼운 생각들을 하며 뛰는 사이 둘은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아슬아슬하게 식이 시작되기 전에 맞춰왔는지 사람들이 많았다. 많은 이들이 축하를 보내고 한편에는 신랑과 신부가 연애 동안 찍은 사진과 결혼사진이 액자에 걸려있었다. 신랑도 신부도 어느 사진에서나 해맑게 웃었다. 양호열이 식장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는 사이 누나는 신부에게 인사를 하고 왔다며 뛰느라 엉망이 되었던 앞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이상해?”
“아뇨, 괜찮은데···.”


가까이 얼굴을 가져와 묻는 누나의 모습에 양호열은 평소와 다르게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울렁거림이 가시지를 않는다. 먹고 나온 아침이 문제인가, 라고 생각하기에는 속이 잠잠하다. 아프다기보다는 정말 울렁거린다는 말이 어울렸다. 양호열의 그런 모습에 누나는 눈을 반쯤 깔고 어디 아프냐며 작은 목소리로 추궁하다 이내 양호열의 한쪽 손을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소화가 안 될 때 누르면 좋은 혈이래, 라며.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양호열은 누나가 작은 입을 오거리며 자기 손을 세게 눌러주는 모습이 나쁘지 않아서 오, 괜찮아지는 것 같기도? 라며 연기를 펼쳤다. 한참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은은한 클래식 노래와 함께 식이 시작되었다. 신랑이 입장하고 신부가 입장했다. 커다란 샹들리에의 빛에 둘의 행복한 웃음이 반짝이며 빛났다. 누나는 눈물을 훌쩍이며 손뼉을 쳤고 양호열은···. 그런 누나를 보며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사진을 찍고···. 식권을 받아 뷔페에서 밥을 먹으며 아는 얼굴의 사람들과 안부를 주고받다가 들은 말이었다. 둘이 함께 가서 몇 년 사귀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으레 그렇게 묻고는 했다. 어떤 질문은 예의가 없어서 묻는 것이었고 어떤 것은 예의는 있지만 말할 것이 없어서 묻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후자였다. 그리고 결혼식장이니까. 양호열은 그렇게 생각하며 대답하지 않고 물을 마셨다. 양호열에게 결혼은 생각은 해도 너무 먼 이야기 같아서 쉽게 넘겨들을 수 있었으니까.


야! 무슨 남의 결혼식장 와서도 그 소리를 하니?”
“아니, 뭐 너희 오래 사귀었으니까 그렇지.”
“그렇긴 한데, 뭐 결혼하고 싶다고 하면 그게 뚝딱 되니?”


누나는 답답한지 종이컵에 사이다를 따라 마셨다. 양호열은 그런 누나의 대답에 공감했다. 이런 식장을 하루 빌리는 건, 양복과 드레스는, 축하하러 와준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한 식사비는···. 그런 생각을 하면 너무 멀고 먼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학생 때와 다르게 양호열은 안정적인 일을 하고 있었다. 모아둔 돈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누나도 그랬다. 돈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없는 것도 아니었다. 더 없을 때도 둘이서 어떻게든 지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구질구질하면서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 날들도 모두 웃는 누나의 얼굴만 떠올랐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양호열은 붉어진 볼을 가리려 커다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누나의 모습을 상상하자니 좋았다. 그 옆에 자신이 있는 것도···. 좋았 다. 많은 사람들에게 받는 축하도 기뻤다.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좋을 것 같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아는 사람들과 술잔을 더 기울이다가 헤어져서 집으로 가는 길은 조용했다. 술을 마셔서 열이 올라 재킷은 벗어 들고, 셔츠는 팔꿈치까지 걷어 올렸다. 밤공기는 시원했고 술이 들어가서 들뜬 누나는 귀여웠다.


야, 우리 편의점에서 술이랑 과자 사 가자. 간단하게 집에서···. 어때?”
“... 그러든가요.”


술을 마시고 밥을 먹었는데도 울렁거림이 가시질 않았다. 흥이 나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종종걸음으로 뛰어가는 누나를 바라보며 양호열은 천천히 걸어갔다. 거리를 좁히지도 멀어지지도 않고 누나가 잘 보이는 정도를 유지하며 그 순간을 즐겼다.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날을 보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물론, 지금 잘 사귀고 있고 싸워도 반나절이면 화해하니까 앞으로도 무슨 일이 있지 않으면···. 양호열은 걸음을 멈췄다. 욕심이 났다. 왜 그렇게들 사랑에 매달리나 했는데 이 순간 그런 감정을 이해하고 말았다. 결혼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어쩌면 더 싸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결혼한다면 그게 누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니, 애초에 선택지는 하나였다. 애절한 고백은 구질 구질한 게 아니구나.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어. 양호열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술기운인지 볼이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누나.”
“응?”
“누나는···. 어떤데요?”


혹시나 싫다고 하면 어쩌지, 하고 불안한 마음에 재킷을 꽉 쥐며 물었다. 고개를 돌린 누나도 술기운에 얼굴이 붉었다. 뭐가, 네가 안주 사는 거? 누나의 말에 양호열은 조금 뜸을 들이다 결국 입을 열었다. 이 순간 공기가 멈춘 것 같았다. 늦은 밤이라 조용한 골목에는 정말 둘 뿐이었지만, 정말 세상에 누나와 둘만 남겨진 것 같았다.


“아니, 그거 말고요···. 결혼이요.”


결혼이라는 글자가 이렇게 발음하기 어려웠던가, 간신히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삑사리가 날 뻔했다. 진지해지는 공기에 목뒤를 만지작거렸다. 누나는 너까지 그 소리냐며 힘을 주던 어깨를 아래로 축 늘어트렸다. 아니, 너랑 하는 결혼이 싫은 건 아니고 주변에서 자꾸 물어보니까 엄청 스트레스받는다는 거지. 양호열은 그 말에 안도했다. 티는 안 났겠지만 참고 있던 숨을 작게 뱉어냈다. 누나도 진지한 분위기의 공기를 읽었는지 토끼처럼 뛰던 걸음을 멈추고 양호열을 바라보았다. 그건 너랑 내가 알아서 할 문제인데, 왜 남이 나서서 급하게 구냐고. 가볍게 말하지만, 진심이라는 듯한 목소리에 양호열은 누나에게 집중했다.


“뭣보다, 너나 나나 결혼 생각은 아직 없는데···.”
“내가, 누나랑 결혼하고 싶으면요?”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누나의 말을 끊고 할 만큼 조급했다. 한 번 감정을 인정하고 내뱉기 시작하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양호열은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 자신을 상상했다. 그래도 그렇게 해서 누나가 받아주면 기쁠 것 같았다. 긴장해 눈을 마주 보기가 어려웠다. 누나는 당황해서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는 어쩔 줄 몰라했다. 양호열은 이런 행복한 날들이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냥, 누나랑 있는 날들을 붙잡고 싶었다. 어떤 날은 싸우고 울어도 되니까 둘이서 있고 싶었다. 내가···. 누나랑 결혼하고 싶어지면요? 내가 그렇다면 누나 마음은 어떤데요. 누나랑 봤던 영화에나 나올법한 말을 자신이 한다니. 낯설다고 생각하면서도 좋았다.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본 누나의 얼굴은 알코올이 아닌 수줍음으로 붉게 물들어있는 얼굴이었으니까.


누나, 나랑 결혼하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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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라 님 타로 커미션  (0) 2024.12.18